내 서울은 불광천에서 시작한다
내가 사는 곳은 불광천과 DMC역이 만나는 곳 근처다. 몸이 가볍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면 매일 산책하기 꽤 좋은 곳에 산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날렵한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썩 날렵하지 않은 내 몸은 운동화 밑창이 헤질 정도로 돌아다니는 일을 그렇게 기꺼워하지 않는다. 불광천에 간다는 것도 내게는 생각보다 큰 의지력이 필요하다. 사실 집에서 그곳까지 아주 먼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을 먹어야 움직이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특히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하루의 동선이 점점 단순해진다. 집에서 회사, 회사에서 다시 집. 어느 순간 내가 사는 도시도 그 두 지점 사이로만 좁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를 잃지 않으려면, 가끔은 뻥 뚫린 곳으로 나가야 한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거나, 몸이 무겁고 움직임이 둔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특히 더 그렇다.

그래서 이쪽으로 이사 오고 나서 제일 먼저 산 물건이 있는데, 20인치 바퀴의 동네 마실용 자전거다.
삼천리자전거.
어릴 때는 그 이름이 조금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너무 한국적이고, 너무 오래된 이름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은 그 이름이 싫지 않다. K-컬처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시대가 돼서 그런 걸까.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의 땅을 아름답게 부르던 오래된 표현이다. 삼천리자전거라는 이름을 들으면 나는 괜히 그 말이 떠오른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쌩쌩 달린다는 뜻 같기도 하다. 물론 정말 그런 뜻으로 지은 이름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와닿는 이름이다.
달려라 달려, 그리고 끼이이익!
삼천리를 달릴 것 같은 이름의 작은 미니벨로를 엘리베이터에 싣고 내려간다. 그리고 DMC역 쪽, 불광천으로 내려가는 진입로를 향한다.
진입로에 들어서면 바로 얕은 내리막길이 나온다. 안내 표지에는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식의 말이 적혀 있다. 맞는 말이다. 내려서 끌고 가야 한다.

그래도 매번 내려갈 때마다 생각한다.
다음엔 꼭 끌고 내려가야지.
그냥 물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렇게 불광천 길로 내려오면 이제 선택지는 단순해진다. 그냥 물길을 따라간다. 너무 열심히 달릴 필요도 없고, 꼭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다만 한강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면 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DMC역 근처에서 시작하면 한강까지는 대략 3.2km 정도다. 숫자로 보면 아주 긴 거리는 아닌데, 집 안에 있을 때는 그 정도도 꽤 멀게 느껴진다. 이상하다. 몸은 그대로인데 밖으로 나오면 거리의 느낌이 조금 바뀐다.
불광천을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도시가 조금 느슨해진다. DMC역 근처의 건물과 사람들, 출근과 퇴근의 속도에서 조금 떨어져 나온 느낌이 든다. 여전히 서울 안에 있는데, 머릿속은 조금 덜 복잡해진다.

월드컵경기장 옆을 지나 한강까지 가면 성산대교 아래쪽에 닿을 수 있다. 나는 그 지점이 좋다. 무언가 대단한 풍경이라서라기보다, 아 여기까지 왔네 하는 느낌이 있다. 몸을 크게 바꾼 것도 아니고, 삶이 갑자기 정리된 것도 아닌데,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 기분.
거기 편의점에서 시원한 음료를 하나 사 마시면 된다. 사실 그 정도면 충분할 때가 많다. 유명한 식당이나 멋진 카페가 아니어도, 한강 바람 맞으면서 마시는 차가운 음료 하나가 그날의 작은 보상이 된다.
이런 게 선형의 세계에서 잠깐 빠져나오는 기분인 것 같다. 집에서 회사까지 최단 거리만 계산하는 2D 같은 하루에서, 바람 냄새도 나고 경사도 느껴지는 3D의 시간으로 잠깐 넘어오는 느낌.
사실 여기서 조금만 더 움직이면 망원시장 쪽으로도 이어진다. 성산대교 아래에서 음료 하나 마시고 돌아와도 좋지만, 기운이 조금 남는 날에는 망원시장까지 가도 된다. 그쪽은 또 다른 서울이다. 물길의 서울에서 시장의 서울로 넘어가는 느낌이 있다.
서울이 낯선 친구에게, 이 길을 알려주고 싶다

만약 서울에 처음 온 친구가 내 동네에 온다면, 나는 이 길을 같이 가보고 싶다.
DMC역 근처에 따릉이 빌리는 곳이 있어. 따릉이는 서울에서 빌려 탈 수 있는 공공자전거야. 거기서 하나 빌려서 불광천 따라 한강까지 가보자. 힘들면 중간에 돌아와도 되고.
서울 여행이라고 해서 늘 큰 장소만 가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경복궁도 가고, 성수동 카페도 가고, 한강 야경도 보면 좋다. 그런데 하루쯤은 이런 길도 괜찮다. 동네 사람이 실제로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 길이 누군가에게 대단한 코스가 될지는 모르겠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짧을 수도 있고,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냥 평범한 산책로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성산대교 아래 편의점까지 가서도 별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에게는 이 길이 있다.
집과 회사 사이에서 조금씩 좁아지는 하루를, 아주 잠깐이라도 넓혀주는 길. 몸은 여전히 무겁고, 브레이크 소리는 여전히 듣기 싫고, 다음번에도 아마 또 내리막에서 끌고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나간다. 가끔은 나가야 한다.
서울이 낯선 누군가에게 내가 먼저 보여주고 싶은 서울은, 어쩌면 이런 모습에 더 가깝다. 유명한 장면보다 조금 덜 정돈되어 있고, 조금 더 생활에 붙어 있는 곳.
그 정도의 서울도 나는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외국인도 쉽게 빌릴 수 있는 따릉이 자전거 대여
이 글은 에세이에 가깝지만, 혹시 이 길을 처음 가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작은 안내를 따로 남겨둔다.
앱 화면이나 결제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바뀔 수 있다. 그래도 기본 흐름은 어렵지 않다. 휴대폰 하나와 결제 가능한 카드가 있으면 대부분 진행할 수 있다.

1. 따릉이 앱 설치하기
앱스토어 또는 구글 플레이에서 따릉이 또는 Seoul Bike를 검색해 앱을 설치한다.
앱을 켜면 외국인 이용자를 위한 Foreigner 메뉴를 찾을 수 있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다면 이 메뉴로 들어가는 편이 편하다.
2. 이용권 구매하기
앱 하단의 Purchase pass 메뉴에서 이용권을 구매한다.
보통 짧게 타볼 거라면 1시간권이면 충분하다. DMC역 근처에서 불광천을 따라 한강까지 다녀오는 정도라면 천천히 움직여도 부담이 크지 않다.
3. 가까운 대여소에서 QR 스캔하기
지도에서 가까운 대여소를 찾고, 자전거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앱으로 스캔한다. 잠금이 풀리면 바로 탈 수 있다.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1번 출구로 나와 직진 방향으로 1분 정도 걸어가면 194 증산교 앞 따릉이 대여소가 보인다. 이곳에서 빌린 뒤 불광천 자전거길로 내려가면 된다.
4. DMC역 불광천 한강 자전거 코스
길은 단순해서 불광천 물길을 따라 한강 방향으로 가면 된다. 긴 거리가 아니어서 경치를 구경하며 천천히 달리면 15분 전후면 도착한다.
DMC역 근처에서 한강이 보이고 왼편으로 성산대교가 보인다. 망원한강공원이나 나루터에서 한강 바람을 맞으며 잠깐 쉬고, 시원한 음료나 맥주 한 캔과 함께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좋다.
해가 질 무렵 출발해서 한강의 노을빛과 야경을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5. 망원시장 쪽으로 이어가기

나는 보통 다시 집 쪽으로 돌아오지만, 여행자라면 여기서 망원시장 쪽으로 이어가도 좋다. 한강변에서 망원지하차도 쪽으로 나오면 망원시장까지 갈 수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써보려 한다.